HAENYEO CULTURE · VILLAGE HISTORY

부산 유일의 활동 해녀촌
연화리의 발자취

연화리(蓮花里) · 어촌계 단위 물질을 이어가는 흔치 않은 마을

연화리 앞바다와 해안 방파제, 마을 앞 도로가 나란히 놓인 낮 시간대 풍경
부산에서 현직 해녀가 남아 있는 연화리 앞바다, 지금도 어머니들이 물에 드는 자리예요

"해녀 하면 제주라고 다들 생각하시죠. 그런데 저희 어머니들은 여기 부산 기장에서 육십 해가 넘도록 물에 드셨어요."

기장 연화리 어촌계 구술 정리, 향토자료 편집본에서

해녀(海女) 하면 제주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이 많아요. 실제로 제주 잠녀 문화(濟州海女文化)는 2016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거든요. 그런데 한반도 동남 해안, 부산광역시 안에도 어촌계 단위로 물질을 이어가는 어촌마을이 있답니다. 바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蓮花里)예요. 이 페이지는 마을이 어떻게 생겨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공공 향토자료와 공개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편안하게 풀어드리는 안내예요.

연화리는 부산 동쪽 끝, 동해와 맞닿은 어촌이에요. 미역, 다시마, 전복, 소라, 해삼이 자랄 수 있는 갯바위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서 오래전부터 채취 어업이 자리 잡았어요. 마을 이름에 "연꽃 연(蓮)" 자가 들어가는 건 해안 안쪽 지형이 연꽃잎처럼 펼쳐져 보였기 때문이라고 향토자료에 기록돼 있답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 제주 잠수 어머니들이 일거리를 따라 동해안을 오가면서, 그 흐름의 한 갈래가 기장 해역에 정착하게 됐다고 전해지고요.

왜 하필 연화리였을까요. 세 가지 조건이 겹쳤어요. 첫째는 얕은 갯바위와 조간대(潮間帶)가 넓어 상군, 중군, 하군 어머니들이 각자 익숙한 깊이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둘째는 마을 안쪽 지형이 오목해 파도를 완화해 주는 자연 방파 구조가 있었다는 점이고요. 셋째는 마을 어른들이 이주 해녀를 배척하지 않고, 어장 순번과 채취 어종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규약을 일찍부터 세워두었다는 점이에요.

이 페이지의 소제목들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읽으시면, 1950년대 이주 초기부터 2020년대 지금까지 마을의 흐름이 한눈에 이어져요. 중간중간 어촌계 어머니들의 구술 인용, 마을 향토자료 인용, 그리고 UNESCO 등재 이후의 보호 흐름까지 정리했어요. 통계 숫자는 되도록 원자료(원출처)를 함께 표기해서 어디에서 나온 값인지 바로 확인하실 수 있게 했답니다.

방문을 앞두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마지막 단락의 "방문객이 지켜주시면 좋은 예의" 부분을 특히 눈여겨봐 주세요. 마을 안 작업장 근처에서 만나실 수 있는 물질 하시는 분들과 편안한 인사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는 짧은 안내랍니다. 마을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들의 일터이기도 하거든요.

시대별 마을의 발자취

정확한 연도를 못 박기 어려운 대목이 많지만, 어촌계 구술 기록과 기장군 향토자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이어져요.

  1. 일제강점기 ~ 1940년대

    제주 해녀 어머니들의 동해안 이동

    일거리를 따라 동해안 여러 어촌으로 이주 흐름이 이어졌고, 그 가운데 일부가 부산 기장 해역까지 도달했어요. 이 시기의 이주는 계절 이동에 가까웠고, 정착은 광복 이후에 본격화됐답니다.

  2. 1950년대 전후

    연화리 정착과 어촌계 편입

    제주 출신 어머니들이 마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마을 어른들이 어장 순번을 함께 조정해 주며 이주 어머니들이 안정적으로 물에 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답니다.

  3. 1960년대 ~ 1970년대

    어촌계 정비, 정기 작업으로 자리 잡다

    마을 어촌계 규약이 정비되면서 작업 시간, 짝꿍 배치, 채취 어종의 시즌 규정이 문서화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부터 물질이 개별 작업이 아닌 마을 공동 작업으로 자리 잡습니다.

  4. 1980년대 ~ 1990년대

    마을 매장 형성, 수조 판매의 시작

    어촌계에서 올라온 물량 일부가 마을 안 매장 수조로 이어져, 그날 채취분이 손님상에 오르는 흐름이 자리 잡았어요. 이 무렵부터 연화리는 관광객이 조금씩 찾는 어촌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했답니다.

  5. 2000년대 ~ 2010년대

    연화리, 부산 미식 지도의 한 좌표로

    수도권 방송과 지역 언론에 소개되며 방문객이 늘어난 시기예요. 이 흐름 안에서도 어촌계 어머니들은 채취-분류-매장 인계라는 하루 사이클을 그대로 유지했어요.

  6. 2016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제주 해녀 문화가 UNESCO ICH file 01068로 등재됐어요. 부산 해녀는 공식 등재 명칭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한국 해녀 문화 전체의 보호 흐름 안에서 함께 조명되기 시작했답니다.

  7. 2020년대

    고령화와 세대 전수 과제

    연화리 활동 어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후반 이상으로 올라섰어요. 후속 세대의 진입이 줄어드는 흐름은 제주와 비슷하지만, 어촌계 단위 비공식 전수가 마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답니다.

연화리 해녀촌 거리에 자리한 51년 된 매장 외관과 주변 상가 풍경
마을 한 자리를 51년째 지켜 온 건물, 해녀촌의 시간이 그대로 쌓여 있어요

왜 연화리가 부산의 마지막 해녀촌으로 남았을까

01갯바위 환경

얕은 조간대와 갯바위가 넓게 이어져 상군, 중군, 하군 어머니들이 각자 익숙한 깊이에서 작업할 수 있어요.

02오목한 지형

마을 안쪽이 오목하게 들어와 파도를 완화해 주는 자연 방파 구조가 있어 이른 아침 물에 드는 시간이 확보돼요.

03공동체 규약

어장 순번, 짝꿍 배치, 신참 양성까지 어촌계 단위 규약이 일찍부터 정착돼 이주 어머니들도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04매장 연동 구조

어촌계에서 올라온 물량이 마을 매장 수조로 이어지는 순환이 자리 잡아, 어머니들의 채취가 안정적인 판로로 이어졌답니다.

다른 어촌마을과의 차이

부산 인근 다른 어촌(대변항, 송정, 청사포)에도 어업 활동은 활발하지만, 어촌계 단위로 물질을 정기 운영하는 곳은 드물어요. 연화리는 어촌계 운영의 중심에 물질을 두고 있어서, 매장 앞 수조에 들어가는 물량의 일정 부분이 마을 어머니들의 채취에서 이어져요. 이 점이 연화리를 부산의 마지막 활동 해녀촌으로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랍니다.

방문객이 지켜주시면 좋은 예의

  • ·마을 안 작업장 근처에서 작업 중인 어머니들을 만나면, 인물 클로즈업 사진은 반드시 동의를 먼저 구해 주세요. 멀리서 담는 풍경 사진은 무방해요.
  • ·오후 시간대에 잠수복, 테왁, 망사리가 줄지어 말려 있는 풍경을 담으실 때는 도구를 옮기거나 만지지 않는 선에서 감상해 주세요.
  • ·작업 도구(빗창, 까꾸리, 망사리)는 어머니들의 하루 안전과 직결되는 물건이라, 만지거나 들어 보는 행동은 삼가 주세요.
  • ·마을 매장에서 식사하시면 어촌계 운영을 자연스럽게 지원하는 셈이 돼요. 이게 방문객이 마을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응원 방법이에요.

자주 묻는 질문

부산에 해녀가 있는 곳이 연화리 하나뿐인가요?

어촌계 단위로 물질을 정기 운영하는 곳으로는 연화리가 사실상 유일해요. 인근 송정, 청사포, 대변항, 영도구 일부 해안에도 소수 어머니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어촌계 규약과 짝꿍 배치까지 유지되는 곳은 연화리가 대표적이랍니다.

제주 해녀와 부산 해녀는 같은 분들인가요?

출발은 제주에서 이주하신 어머니들이 다수였어요. 다만 60~70년이 흐르는 사이에 연화리에서 태어나 물질을 익힌 2세대, 3세대 어머니들이 자리를 잡았답니다. 지금의 마을 어머니들은 부산 기장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훨씬 강하게 갖고 계세요.

연화리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였나요?

조선 후기 향토자료부터 "연화(蓮花)"라는 지명이 등장해요. 해안 안쪽 지형이 연꽃잎처럼 오목하게 펼쳐져 있어 연꽃 연(蓮) 자가 붙었다고 전해진답니다. 지명 자체는 어촌 형성보다 훨씬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름이에요.

연화리에서 활동하는 해녀 어머니는 몇 분인가요?

공식 통계로 공개된 정확한 인원은 없어요. 어촌계와 인근 매장 운영을 종합해 보면 수십 명 단위로 추정되고,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 이상이에요. 제주(2020년 서귀포시 기준 91.3%가 60대 이상)와 비슷한 고령화 흐름이랍니다.

지금도 신참 해녀 어머니가 들어오시나요?

수는 매우 적지만 어촌계 안에서 비공식 전수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어요. 정식 해녀학교 형태는 아직 부산에 없지만, 마을 어른이 지척에서 신참을 안내하는 방식이 남아 있답니다.

마을 매장에서 파는 것들이 다 어머니들의 채취분인가요?

매장마다 다르지만, 어촌계 어머니들의 채취분이 매장 수조로 이어지는 흐름이 대표적이에요. 채취가 부족한 날에는 인근 위판장과 산지 직송 물량으로 보완해서 손님상에 올라가요.

방문객이 어머니들 물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나요?

이른 아침(06:00~09:00) 작업 시간에는 바다 쪽에서 어머니들의 실루엣과 숨비소리가 멀리서 들리기도 해요. 다만 물질 자체는 어머니들의 노동이라 가까이 다가가지 마시고, 멀리서 조용히 감상해 주시면 좋아요.

해녀 문화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후속 세대 진입과 안정적 수입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여러 향토자료의 공통된 지적이에요. 방문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마을 매장에서 식사하며 어촌계 운영을 자연스럽게 지원하고, 해녀 관련 책과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는 정도랍니다.

연화리의 마을 이야기를 편안히 읽으셨다면

마을 어머니들의 하루가 어떻게 매장 수조와 손님상으로 이어지는지, 51년째 대로변에서 이어져 온 장씨해녀집의 시그니처 4종과 좌석, 예약 정보를 메인 페이지에서 함께 살펴보시면 방문 계획이 훨씬 편해져요.

장씨해녀집 본점 안내 페이지 열기

마을을 오래 지켜본 마음으로

연화리는 부산광역시 안에서 어촌계 단위 물질이 이어져 온 흔치 않은 어촌마을이에요. 마을 어른들의 구술과 향토자료를 대조하며 정리한 이 안내가, 방문을 앞두신 분께 마을을 조금 더 정중하게 만나실 수 있는 배경이 되었으면 해요. 마을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들의 일터이기도 하거든요. 이 페이지의 내용은 매월 초 공공 향토자료 갱신본을 대조해 다시 살펴보고 있어요. 새로 확인된 사실이 있으면 문단을 조용히 다듬는 방식으로 갱신한답니다.

구글 맵에서 마을 위치 열기 →

출처 · 업데이트

  • 기장군청 향토자료 (공공누리 1유형)
  • 부산광역시청 향토자료 (공공누리 1유형)
  • 문화재청(국가유산청) 무형유산 안내 (공공누리 1유형)
  • UNESCO ICH 제주 해녀 문화 페이지 (file 01068, CC BY-SA 3.0 IGO)
  • 위키백과 '해녀', '연화리' (CC BY-SA 4.0)

마지막 점검 2026-07 · 향토자료 갱신본은 매월 초 대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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